[알시르] 해포AU_연화님

 
 
by. 연화 (@End_And_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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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호그와트에서 가장 유별나고 눈에 띄는 학생의 자리는 그리핀도르나 슬리데린 차지였다. 거기에 학문적으로 교수님들의 주목을 받는 학생을 끼워넣는다면 간간히 레번클로가 모습을 보였다. 한마디로 후플푸프는 네 기숙사 중 가장 시시하고 재미없는 학생들만 모이는 곳 취급을 받았으나 가끔은 후플푸프에서도 돌연변이 같은 학생이 나왔다. 다른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한 게 아니라 모든 곳에 들어갈 자격을 갖췄지만 후플푸프의 이념에 가장 부합하여 후플푸프에 배정받은 학생. 언제나 소문의 중심에 서있고 다재다능하며 말 몇 마디 붙여봤다는 사실이 자랑이 될 수 있는 아이. 후플푸프의 자부심. 현재 호그와트에서는 시이 리리아가 그런 아이였다. 물론 깊이 파고 들어보면 그리핀도르보다 더 많은 사건사고에 휘말리는 것 같은 아주 사소한 문제가 있긴 했다. 후플푸프의 사감이신 피네 교수님은 이제 5학년이 된 시이를 반장에 임명함으로써 사고를 줄이려 노력해봤지만, 본인이 주장하듯 시이의 사고에는 대개 본인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알터를 지키려다 휘말렸다는 말이지?”
“네, 교수님.”
“하지만 너는 반장이잖니. 싸움을 중재해야지 끼어들면 어떡하니.”
거기에 대해선 시이도 할 말이 없었다. 반장이 된 이래로 이렇게 심하게 싸우는 아이들을 본 건 처음이었지만, 이제까지 그래왔듯 양 쪽 기숙사에 감점을 부여하고 적당히 말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싸우는 아이들 중 하나가 알터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정색하고 마법을 난사하는 알터가 낯설어서 멈칫했다가 쏘기 주문을 못 막을 것 같아 엉겁결에 끼어들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근처에 있던 학생들이 전부 달려든 패싸움이 되어있었다. 르웰린이 제때 가서 교수님을 모셔오지 않았다면 큰일날 뻔 했다.
“알터, 여전히 할 말 없나요?”
물론 그렇다고 지금 상황이 괜찮은 건 아니었다. 아벨린 교수님의 추궁에도 입을 꾹 다문 알터에게서 싸움에 대한 어떤 설명도 변명도 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비쳤다. 그에 비례해 알터와 싸운 슬리데린의 얼굴은 득의양양해졌지만 앞뒤 사정을 모르는 시이로서는 대신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나마 알터와 같이 있었을 르웰린에게 시선을 던져봐도 돌아오는 건 예의 무관심한 표정이라 별다른 소득이 없을 게 분명해 보였다. 지지부진한 대화 끝에 먼저 주문을 날린 것도 알터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한 발짝 떨어져 상황을 관망하던 톨비쉬 교수님이 박수를 쳐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더 물어봐도 소용 없을 것 같구나. 너는 이만 가보거라. 따로 징계를 내리지는 않겠지만 6학년이 돼서 4학년과 싸운 게 잘한 거라고는 못하겠구나.”
순간 시이는 황당한 얼굴을 했다. 당연히 알터와 같은 학년이라 낯선 얼굴이겠거니 했는데 6학년이라니. 알터가 일방적으로 잘못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도 교수님들이 뭐라도 말해보라 기다려주신 이유가 있었다. 스쳐간 시이의 시선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시비라도 거는 듯 눈을 부릅떠보인 슬리데린은 귀 끝이 살짝 붉어진 채로 자리를 빠져나갔다. 아직도 할 말이 없느냐는 교수님들의 질문에 꿋꿋하게 침묵을 지킨 알터는 결국 금지된 숲에 다녀오라는 징계를 받았다. 답지 않게 굳은 표정으로 징계를 받아들이던 얼굴은 시이가 같은 징계를 받을 때가 되어서야 흔들렸다.
“시이님은 저 때문에 휘말리신 거에요!”
“하지만 싸운 건 사실이잖니? 반장이라면 조금 더 책임감을 가져야 했어.”
피네 교수님의 말에 시이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반장 배지를 달고 다니는 이상 그보다는 제대로 된 대처를 해야했다. 그랬다면 간단한 감점으로 상황을 끝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거기에 대한 잘못도 있으리라. 당사자가 고분고분 인정해버리자 차마 말을 더할 수 없어진 알터는 우울과 자책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시이를 바라봤으나 바꿀 수 있는 건 없었다. 말을 마친 교수님들이 사라지자 기껏 담담한 척 하던 기색마저 사라지고 한껏 울상을 지은 알터가 시이를 불렀다. 시이님 하고 흐려지는 목소리에 시이는 다급하게 손을 휘저었다.
“네 탓 아닌 거 알지? 그보다 어쩌다 6학년이랑 싸운거야? 슬리데린이면 만날 일도 거의 없을텐데.”
“그건, 그건 말하기 싫어요.”
“나한테도 비밀이야?”
잠시 망설이는 듯하던 알터는 이내 주먹을 꽉 쥐더니 아무리 시이님이라도 이것만은 비밀이라고 선언했다. 당연히 교수님들 앞이라 말하지 않는 줄 알았던 시이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알터를 바라봤다. 마냥 어린 줄 알았던 동생이 어느날 갑자기 훌쩍 커오면 이런 기분일까? 손을 쭉 뻗자 익숙하게 머리를 부벼오는 모습은 언제나와 같은데 정색하고 싸우던 모습이나 비밀을 만드는 모습은 한없이 낯설어서 그 사이의 간격을 재보게 만든다. 하지만 어떤 행동을 하든 알터는 알터로 남아있어 줄 것을 알아서 생각은 결코 침잠하는 일 없이 원래의 궤도로 돌아왔다. 그 슬리데린 6학년이 어지간히 이상하게 굴었겠지. 알터한테 그럴 생각이 드나? 이해할 수가 없네. 속으로 투덜거린 시이는 문득 르웰린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한 채 징계 받으러 가는 길을 계속 따라와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숙사 가봐야하는 거 아니야? 곧 통금시간인데.”
“들어가봐야 아까 그 사람과 얼굴 마주칠 뿐인걸요. 당신들만 금지된 숲에 보내긴 불안하기도 하고요.”
“카즈윈 교수님께서 같이 가 주실텐데?”
르웰린은 얼굴 표정만으로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묻는 기예를 선보였다. 사실 반사적으로 말했을 뿐 시이 스스로 생각해도 썩 설득력 있는 소리는 아니었다. 분명 징계 내용만 대충 안내해주시고는 어딘가 늘어져 주무시겠지. 아니, 징계 내용이라도 제대로 알려주시면 다행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지자 그래도 반장으로서 통금시간을 어기게 둘 수 없다는 말은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카즈윈 교수님이라면 아마 르웰린이 있는지 없는지 같은 건 크게 신경쓰지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카즈윈 교수님을 닥달해서라도 징계 내용을 듣게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제가 같이 가는 편이 낫겠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 조금 얄밉게 묻는 말에 시이와 알터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긍정했다. 사양하기엔 르웰린의 도움을 받을 구석이 너무 많았다. 징계의 첫번째 관문은 다른 게 아니라 카즈윈 교수님을 찾는 것 자체였다. 과연 카즈윈 교수님은 어디서 잠들어 계실까.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을 기막히게 찾아 쉬고계시는 카즈윈 교수님의 행방을 찾아낸 건 르웰린의 감이었다. 알터가 유명 예언가 가문의 능력을 이렇게 써도 되는 건지 이의를 제기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얼굴로 깔끔하게 무시해버렸다. 정말 괜찮은 게 맞냐는 소근거림을 들은 시이도 민망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일 따름이었다. 이제와 괜찮은지 따지기엔 시이가 르웰린에게 도움받은 일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 도움이란 보통 깜빡하고 어딘가 두고 와버린 과제를 찾아오거나 잃어버린 깃펜을 찾는 것 같은 사소한 일이었으니 교수님을 찾는 정도면 아주 양호한 축에 속했다.
“교수님, 카즈윈 교수님. 징계 받으러 왔어요.”
금지된 숲 옆 오두막에서 주무시고 계시던 카즈윈 교수님은 하다못해 어쩌다 징계를 받은 건지조차 묻지 않으셨다. 나서서 설명해주려는 르웰린의 말도 손을 휙휙 저어 무시하고는 품에서 하얀 털 묶음을 보여주며 열 뭉치라고 딱 한 마디를 한 뒤 지도 하나를 건네주고 다시 잘 준비를 하셨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건 징계의 두 번째 관문이었다. 카즈윈 교수님치고는 꽤 친절한 설명이었으나 대체 하얀 털 묶음의 정체는 무엇인가. 크럽의 털이 아닐까 하던 알터의 의견은 크럽의 털을 대체 어디 쓰냐는 르웰린의 반박에 격침당했다. 수많은 동물의 털들이 알터의 입에서 나오고 르웰린이 조목조목 반박하기를 열댓번, 두 사람을 말리는 걸 포기하고 조잡한 지도만 뚫어져라 보던 시이가 결정을 내렸다.
“일단 가봐야 알 것 같은데? 여기 가도 되는 부분만 돌아다니다 보면 뭐든 보이겠지.”
“흐음, 좋은 생각입니다. 가져오라고 하셨으니 확실히 표시된 부분에 똑같이 생긴 털이 있겠죠. 어차피 이게 뭔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가져가는게 중요한 거니까요.”
시이가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감명받은 듯 했던 알터는 당연히 찬성이었다. 지도를 꼼꼼히 훑은 뒤 지팡이를 꺼내든 시이가 지팡이 끝에 불을 밝혔다.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에 뒤늦게 ‘금지된 숲'에 들어간다는 실감이 난 건지 후다닥 지팡이를 뽑아든 알터의 얼굴에 긴장이 가득했다.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던 건지 앞장서 숲에 들어가는 시이의 걸음을 따라잡았지만 시이는 뒤에서 조심스럽게 따라오라 주의를 주고는 다시 앞장서 걸어갔다. 둘이 같이 경계하는게 낫지 않냐는 주장은 재고할 가치도 없이 기각되었다. 교수님이 직접 다녀오라고 한 곳이니 안전하리라 생각은 하지만 숲에 얽힌 각종 괴담을 떠올려보면 정말 안전한 게 맞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카즈윈 교수님의 하늘을 뚫는 귀찮음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근본적으로는 피네 교수님과 아벨린 교수님, 톨비쉬 교수님까지 동의하신 징계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대충 그려진 지도나 뭘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숲에 들어가는 현재 상황 따위를 보자면 중간에 중요한 절차가 무시된 건 아닌지 심히 걱정스러워지기만 했다. 나이도 한 살 더 많고 반장이니 조금이라도 위험한 구석이 있다면 내가 나서야 한다. 어쩌면 반장으로의 책임감도 다시 느껴보라는 의미에서 보내신 걸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한 시이의 얼굴이 점점 진지해져가는 찰나 뒤에서 얌전히 따라오던 르웰린이 한 마디를 던졌다. 퍽 무심해보이는 어조였다.
“지도에 표시된 부분까지는 학생들이 몰래 들어와도 눈감아 주시는 곳입니다. 알터씨는 덤벙거리다가 길을 잃을지도 모르니 시이님도 함께 보낸거고요. 이상한 생각 하지 마시죠.”
“저 때문이었나요?”
시이의 표정이 나아지기도 전에 엉망이 된 얼굴을 한 알터가 불쑥 끼어들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모양새라 흠칫할 법도 한데 덤덤히 알터를 마주한 르웰린이 들고 있던 지도를 흔들었다. 따지고 보자면 카즈윈 교수님 탓이죠. 카즈윈 교수님을 믿느니 겸사겸사 시이님을 딸려 보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신 거니까요. 교수님을 그렇게 신랄하게 비난해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르웰린의 목소리는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 단조로워서 오히려 설득력이 있었다. 옆에서 시이도 적극적으로 알터의 탓이 아님을 어필하고서야 안색이 한결 나아진 알터는 어딘가 비장한 얼굴이 되어 지팡이를 고쳐잡았다. 완전히 멀쩡한 상태는 아닌 것 같았지만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없기에 대화를 미뤄둔 시이는 다시 경계를 끌어올리고 숲 안쪽으로 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들어오는 곳은 아니었다. 시이 본인은 맹세컨대 사고를 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호그와트를 다니다 보면 늘 피치 못할 사정들이 생겼다. 이를테자면 누군가 애지중지 기른 티가 나는 고양이가 금지된 숲에 성큼성큼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하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신비한 생물이나 각종 변신술을 배운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정말 평범한 고양이였을까 하는 의심이 들지만 그때는 아직 아는 것 없이 용기만 넘치는 2학년이었으니 선택지가 따로 없었다. 그러고 보면 그때 교수님들이 2학년 짜리가 금지된 숲에 들어가는 걸 모르실 리가 없는데 놔두셨구나. 뒤늦은 깨달음이 스치고 묘한 얼굴이 된 시이는 르웰린 쪽으로 슬쩍 눈동자를 굴렸다.
“르웰린 혹시 금지된 숲에 들어온 적 있어?”
“아니요. 저는 해마다 나오는 바보들을 막는 쪽이었습니다. 그래도 꼭 다녀와서 자랑하는 사람이 나오지만요.”
갑작스러운 고충에 반응한 건 뜻밖에도 알터였다. 그리핀도르에는 슬리데린보다 더 많은 무모한 학생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친구들을 말리느라 고생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은 시이는 2학년 때의 기억을 평생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후플푸프에는 굳이 그런 모험을 하려 드는 아이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뜻하지 못한 효과라면 침울해져 있던 알터도 사실 금지된 숲에 다녀오는 게 그렇게 큰 징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운을 다소 차린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건 시이도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이 들락거렸을지 모른다는 확신이 들자 필요 이상으로 끌어올렸던 경계도 금세 흐려졌다. 역설적이게도 긴장을 풀고 나자 금지된 숲에서나 볼 수 있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어두침침한 숲인 만큼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마법 식물들과 생물들이 여기저기 서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도에 표시된 더 나아가면 안되는 지점의 끝자락, 세 사람은 나무 여기저기 걸려있는 하얀 털들을 볼 수 있었다.
“시이님, 이거 아닐까요?”
“맞는 것 같네. 유니콘의 털인가봐.”
저만치 성스러울만큼 새하얀 털로 뒤덮인 유니콘이 그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볼이 발갛게 상기된 알터가 시이의 뒤로 바짝 다가와 유니콘은 처음 본다며 속닥거렸다. 그러고보니 유니콘은 4학년 말은 되어야 배웠던가. 조용히 주머니 이쪽저쪽을 뒤지던 시이가 설탕으로 범벅 된 사탕을 찾아 하얀 가루만 톡톡 털어 손 위에 얹었다.
“알터, 잠시만 뒤로 가볼래? 유니콘은 남자가 있으면 잘 안 다가오거든.”
후다닥 뒤로 물러난 알터는 유니콘이 천천히 다가와 설탕을 핥아먹는 모습을 감격에 찬 얼굴로 바라봤다. 이제 가까이 와도 된다는 손짓에 느리게 돌아오는 발걸음에 신중함이 가득했다. 나눠받은 설탕을 유니콘에게 주며 활짝 웃는 걸 보니 이제 기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싶었다. 정확히 유니콘의 털을 세뭉치쯤 모아 들고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는 르웰린과 마주치기 전까지는. 징계를 받으러 온 거 아니었냐는 말에 대답이 궁해진 두 사람은 서둘러 유니콘과 인사한 뒤 민망하게 웃으며 나뭇가지 여기저기에 걸려있는 유니콘의 털을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기저기 널려있는 것 같던 유니콘의 털은 모아놓고 나니 생각보다 적어서 열 뭉치를 다 모으는 데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더 늦어지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털뭉치를 줍던 시이는 마지막 뭉치를 완성하는 순간 저만치 들려오는 주문 외치는 소리에 바로 지팡이를 뽑아들고 달려갔다.
“무슨 일이야?”
“시이님, 머리 위를 조심하세요!”
알터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자 푸른 빛깔의 벌과 같은 곤충이 아슬아슬하게 귓가를 비껴 날아갔다. 서둘러 속력 감소 마법을 걸고 두 사람 곁으로 가보니 이리저리 구른 기색이 역력했다. 높은 곳에 있는 털을 주우려다 빌리위그의 집을 잘못 건드린 모양이었다. 급한대로 방어막을 두르고 나자 황당한 기분이 먼저 들었다. 왜 학교 바로 옆의 숲에서 XXXX등급 마법 생물과 XXX등급 마법생물이 함께 살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두 생물을 동시에 만나는 건 기막힌 불운일까, 기막힌 행운일까. 별다른 해는 없으니 행운인가. 실없는 생각을 이어가던 도중 불길한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나더니 빌리위그 무리가 정확히 같은 곳을 향해 돌진해왔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방어막이 깨져나가고 시이는 알터와 르웰린을 감싸며 다시금 지팡이를 휘둘렀다. 팔에 화끈한 느낌이 스쳐갔다.
“괜찮아?”
“시, 시이님은요? 괜찮으세요?”
당황한 알터를 옆으로 밀어버린 르웰린이 곧장 다친 쪽 팔을 잡았다. 쏘이셨군요. 확신하는 말에 시이는 적당히 웃어버렸다. 어차피 문제점이라 해봐야 잠시 몸이 공중에 뜨는 정도였다. 약간의 현기증이 동반되긴 했지만 뒤늦게 상처를 본 알터가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으니 티를 낼 수야 없었다. 하지만 웃는 얼굴 정도로 알터를 달래긴 역부족이었는지 녹색 눈동자에 금세 물기가 어렸다. 공중으로 둥둥 떠오르는 와중에 너른 등을 토닥이고 있자니 결국 눈물이 몇 방울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시이가 다급하게 눈물을 닦아주며 서러운 녹색 눈동자와 시선을 맞췄다.
“정말 괜찮다니까? 이거 과자 원료로 사용되는 생물이야. 안전해. 그냥 잠시 허공을 떠다닐 뿐이야.”
“하지만, 하지만 시이님 오늘 저 때문에 징계도 같이 받으시고. 나무도, 제가, 흐윽, 제가 잘못 건드렸는데 시이님이 다치시고.”
너무 폐를 끼치고 있는 것 같다며 울어버리고만 아이는 절반의 불안과 절반의 죄책감으로 떨고 있었다. 복도의 소란 때부터 하나씩 쌓여온 마음의 부채는 옆에서 괜찮다고 말해줬다 한들 사라지지 못하고 차곡차곡 남아 뒤늦게 터져나왔다. 분위기에 맞지 않게 자꾸만 둥실둥실 떠오르는 몸을 르웰린의 도움으로 간신히 고정시킨 시이가 자꾸 물기 뒤로 숨는 녹색 눈동자를 올곧게 바라봤다. 스멀스멀 등을 타고 기어올라 어느 순간 옴싹달싹 할 수 없게 온몸을 짓누르는 불안은 시이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평생 함께할 것만 같던 불안을 시이도 아직 전부 떨쳐낸 건 아니었으나 적어도 알터와 함께 있을 때만은 온전히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건 전부 알터 덕분이었다. 하여 시이는 기꺼이 아직 불안 속에 몸부림치는 알터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괜찮아. 이건 정말 별 거 아니야.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만약 이보다 더한 일이 생긴 다 해도 뭐 어때?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너를 좋아할 거야. 그건 결코 변하지 않을 사실인 걸.
불가변할 애정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한없이 다감하고 굳건해서 알터는 저를 옥죄는 불안의 그림자에서 금방 벗어날 수 있었다. 비록 온전히 벗어난 건 아니라 해도, 어느 날엔가 불쑥 돌아와 발목을 움켜쥐고 그를 절망 속으로 끌어당긴다 할지라도 상관 없었다. 그게 언제가 되었든 시이는 그의 곁에 있을 것이며 시이가 곁에 있는 한 그는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 해서 알터는 눈물을 금세 닦아버리고 일어서 말갛게 웃어보였다. 화제를 바꿔보려는 듯 시간이 너무 늦지 않았나 걱정하던 알터가 르웰린과 눈을 마주치고 멈칫했다. 그를 빼놓고 한참 감성적이 된 두 사람 사이에서 대놓고 편치 않은 표정을 지은 르웰린이 유니콘 털 뭉치를 들고 삐딱하게 서있었다.
“르웰린?”
“기억해주셨다니 영광이네요. 상기시켜드리자면 저희는 이제 이 숲을 십 분 내로 빠져나가야 합니다.”
간신히 빌리위그 침의 부작용에서 해방된 시이는 드디어 제대로 닿아오는 땅을 톡톡 두들겨보고 거리를 계산했다. 충분할 것 같은데? 가벼운 목소리에 르웰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가서 교수님도 찾아야죠. 카즈윈 교수님은 결코 예상이 가는 장소에 찾기 쉽게 계시는 법이 없었다. 그 사실을 상기한 시이는 조금 다급한 얼굴이 되어 앞서 걸음을 재촉했다. 이번에도 르웰린의 감을 빌려 아슬아슬한 시간에 카즈윈 교수님을 찾아낸 시이는 만약을 대비해 르웰린을 저만치 숨겨두고 혼자 유니콘의 털 뭉치를 들고 확인을 받으러 갔다. 자진해서 함께 기다리겠다며 남은 알터가 슬쩍 르웰린의 눈치를 봤다.
“르웰린, 낮에 일로 할 말이 있습니다.”
“흐음, 당신이 싸운 이유를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인가요?”
다채로운 빛을 내는 보석안이 익숙하게 제 감정을 숨기고 알터의 녹안을 빤히 응시했다. 부탁하는 입장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움츠러든 얼굴을 한 알터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오늘 싸운 이유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비밀로 묻어두고 싶었다.
“왜죠? 차라리 그 사람이 시이님을 잡종이라 불렀다고 이야기 하는 게 낫지 않나요?”
르웰린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유유히 빠져나가게 두는 건 성격에도, 가치관에도 맞지 않았다. 하지만 알터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 단어가 시이님 귀에 들어가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저는 그 쪽이 더 중요해요. 그리고 주문 몇 개는 확실히 들어갔으니까요. 르웰린이 보기엔 알터가 제대로 맞춘 주문보다 맞은 주문이 더 많았다. 애초에 학년이 두 개나 차이났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싸우고 징계까지 받은 사람을 두고 어쩌겠는가. 르웰린은 있어서는 안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슬리데린 기숙사로 돌아가면 두 번 다시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못하게 분위기를 조성해둘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반성하지 못하고 또 같은 실수를 저지른다면 그때 가서 본보기를 보이면 될 일이다. 확인이 끝났다며 돌아오는 시이를 보고 금세 평소의 표정을 덮어쓴 르웰린이 그럼 내일 보자며 매끄럽게 인사했다. 알터도, 시이도 서로를 위해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했으니 이제 르웰린이 그들을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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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동물이 다들 소동물이라 너무 귀여웠습니다. 다들 아직 완전한 어른이 되지 못한 나이지만 감정적인 면에서 제일 안정된 건 르웰린이라고 느껴졌는데요, 르웰린이 시이를 좋아하면서 질투도 하고 짜증도 느끼는 등 감정이 이리 출렁 저리 출렁 하는 부분이 설렜습니다. 원래 사랑을 해서 안하던 행동을 하는 게 제일 아름답다고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시이도 관계에 있어 너무 많은 좌절을 겪어서 아직 누구도 온전히 믿지 못하면서 알터에게만은 굳건한 신뢰를 보여주는 게 좋았어요. 반면에 알터는 사랑을 해서 다른 면을 보여주기 보다, 사랑하기 때문에 본인의 좋은 면-솔직하고 일편단심인 부분-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표현된 덕에 관계와 아이들이 더 다면적으로 느껴진 것 같습니다. 르웰린이 알터에게서 질투 혹은 부러움을 느끼는 부분이 감정적이고 솔직한 면과 알터와 시이 사이 강렬한 맹목과 신뢰라고 하셨는데 개인적으로 알터와 시이 사이의 강렬한 맹목성과 신뢰는 사실 알터의 일방적이고도 직선적인 감정 표현이 선행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럼 르웰린이 부러워하는, 그러나 르웰린이 결코 얻지 못할 알터의 특성은 그 감정에 솔직한 부분이겠죠. 그런데 감정을 잘 숨긴다/감정에 솔직하지 않다가 르웰린의 최대 장점이자 약점이라고 생각해서 자기가 이런 부분에 있어 부러움을 느낀다는 사실마저 숨길거라 생각했는데 어느 정도 직접 내보인다는 점이 의외로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핵심적인 부분은 내보이면서도 짝사랑에 대한 건 또 곧잘 숨길 수 있다는 게 르웰린의 매력이겠죠. 사실 어떤 감정도 잘 다룰 것 같고, 어떤 상황에도 능숙하게 굴 수 있을 것 같은데 바로 그 사실로 말미암아 사랑에 실패했다는 게 너무 취향인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상대한테 질투의 대상이 되다니… 이 부분 너무 최고였어요.. 그걸 르웰린이 무시하지 못하고 삐딱하게 받아친다는 것도요. 시이의 경우에는 알터를 사랑해서 알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준다는 점이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 믿음이나 신뢰라는 건 가장 단단하지만, 가장 연약한 것이라 언제든 무너지기 쉬운데, 지금껏 수많은 무너짐을 경험한 시이가 마지막으로 쌓아올려서 더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 벽이 알터라는 점이 최고였어요. 그런데 정작 또 이 애정을 쏟아 부어준 알터는 자신이 어떤 위대한 일을 했는지는 전혀 모르고, 오히려 스스로의 서투른 애정을 하나하나 쌓아올려 가고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사실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모르기 때문에 부담을 가지거나 좌절하지 않고 본인의 감정을 온전히 쏟아부을 수 있었나 싶기도 하고요. 전반적으로 본인이 가장 본인다운 사랑/사랑으로 변하는 사람이 대비되서 서사적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예쁜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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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해 + 세계관 이해가 너무 완벽하셔서 좋았던 글...
그리고 문체가 완전 취향 저격;;
해포 AU 좋아하는데 심지어 해포 원작 세계관 너무 잘 살려주셔서 + 기사단 애들 잘 녹여주셔서 + 마지막에 캐해까지 그냥 감동 샌드위치
쩝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