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시르] 좀비물 AU_홍님

 

 

ⓒ홍(@plmnbv)

 

 

 

 

 

 

 

도망칠 때는 결코 뒤를 돌아봐선 안 된다.

최근 경험을 통해 습득한 진리였다. 시이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뒤에서 듣기 싫은 시체들의 울음소리가 아우성치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개중에 간간이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러나 그건 차라리 있느니만 못한 꼴이었다. 전부 죽음의 궤를 알리는 비명들뿐이었으니. 아악-! 짧은 단말마의 비명이 다시 한번 고막 속으로 들이닥친다. 그 순간 뇌리 속으로 든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살아야 해. 시이는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나도 잡히는 순간 저 사람들과 같은 몰골이 되는 거야.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속삭이며. 덜덜 떨리는 손가락은 애써 무시하며 시이는 더욱 달리는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누구나 같은 마음이겠지만, 그녀는 아직 죽을 수 없었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죽기 전에 전해줄 말이 있었다. 죽음을 피할 수 없어도 괜찮다. 시이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달리는 이유를 따지자면, 그 까닭은 하나였다. 적어도 이곳은 아니야. 그녀가 생각한 무덤은 아직 저기 멀리에서 빛나고 있었기에. 두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 * *

 

처음 좀비가 나타난 건 한창 태양이 작열하던 8월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국민 그 누구도 세상에 좀비가 들이닥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사람에게 있어서 좀비, 그러니까 살아있는 시체란 환상의 종족에 불과했다. 간간이 좀비 영화가 흥행하거나 좀비를 목격했다는 목격담이 화두로 떠오른 적은 많지만, 전자는 일시적인 오락이요, 후자는 흔한 마약 중독자로 판명나기 마련이었다. 현대의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원했다. 더 자극적이고 맵고 짜릿한 것들 사이에서 이미 오래된 소재는 일종의 클리셰였다. 사람들에게 좀비 영화는 간혹 시간을 때우는 용도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그 누구도 좀비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한 한국 영화가 개봉했다. 제작사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검색해도 무엇 하나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제작사를 꼼꼼히 따지면서까지 영화를 보는 작자들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간만에 나온 좀비 영화에 사람들은 기꺼이 영화를 보러 갔다. 먼저 표를 구매하고, 팝콘과 음료수를 사고. 자리에 앉고. 그렇게 영화관 좌석에 앉아 광고를 보면서 영화를 기다린다. 거기까지는 완벽했다. 갑자기 영화 화면에서 좀비들이 무더기로 쏟아지기 전까지는.

 

그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좀비들이 영화관을 점령하는 데까지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좀비들이 쏟아져 나왔고, 영화관은 아비규환에 빠졌으며 이내 정적에 잠겼다.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영화관의 대다수가 좀비로 새로 태어났다. 그렇게 태어난 신생 좀비들과 영화에서 튀어나온 기존 좀비들은 공통적으로 허기에 굶주려 있었다. 그들은 살아 움직이는 인간을 탐했다. 그러나 영화관에는 더 이상 싱싱한 인간들이 존재하지 않으니 좀비들이 바깥으로 고개를 돌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리고 세상이 빠르게 좀비로 뒤덮이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었다.

 

언제나 우리의 정부는 한 차례 늦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정부는 대책을 강구하고 국민을 안심시키고자 방송을 틀었지만, 이미 좀비의 숫자는 극악무도하게 많았고, 반대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적었다. 그러니 개중에서 시이가 살아남은 것만 하더라도 사실 기적이라고 불려야 마땅했다. 한낱 고등학생이 성인들 사이에서 아득바득 살아남았으니 말이다.

 

특히 그녀의 선한 본성이 있기에 더욱 그녀를 마주친 사람들은 신비롭게 여기고는 했다. 살인과 약탈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도덕이나 신념 따위를 지키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재수가 옴 붙어서 가끔 만나는, 사람의 본성을 들춰 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서 정도를 지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시이 또한 알고 있었다. 자신이 밀레시안일 적 쌓아 올린 기억들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인두겁을 뒤집어쓴 것들에게 살해당하고 생을 마감했으리란 걸. 그녀를 지옥으로 내몰았던 것이 되려 그녀를 살린 셈이다. 그 모순 앞에서 시이는 태연하게 웃을 수 없었다.

 

번쩍, 시이가 감긴 눈을 떴다. 그녀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이 사정없이 쿵쾅거렸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그녀가 손을 들어 이마를 닦아내며 숨을 가다듬었다. 아, 꿈인가···. 그 사실을 인지하자 곧바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다시 한번 그 일을 겪을 자신이 없었다. 사람들의 죽음을 무력하게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영화관의 모든 게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녀가 제 손을 멍하니 내려다본다. 하얗고 상처 하나 없는 손. 전생에 밀레시안 시절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제 그녀가 밀레시안의 시이를 추억할 수 있는 것은 뇌리에 박힌 기억의 파편들밖에 없었다. 그러니 더더욱 초조할 수밖에. 이제는 이것이 환상인지 아닌지조차 모르겠으니. 이윽고 그녀가 주먹을 말아 쥐며 다짐했다. 조금만 기다려줘, 알터, 르웰린. 반드시 만나러 갈 테니. 기약 없는 다짐이었다.

 

* * *

 

 

 

식량을 구하는 건 언제나 힘든 일이었다. 시이가 경계에 찬 눈빛으로 주차장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핀다. 손에는 야구 방망이를 든 상태였다. 언제든지 좀비가 나타난다면 머리를 내려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타난 것은 좀비가 아닌 인간이었다. 저기요-! 거기 누구 있어요-?! 울려 퍼지는 소리에 시이가 멈칫한다. 캬르륵- 인간이 낼 수 없는, 죽은 자의 소리. 그리고 연이어 들려오는 산 자의 외침. 어떡하지? 순간 그런 고민을 했던 것도 같다. 이어서 뇌리 속으로 떠오르는 것은 하나의 자책. 시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비합리적이다. 이건, 비합리적 짓이다. 알고 있다. 그래, 알지만. 알고 있지만···. 곧이어 그녀가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달려갔다.

 

"제가 유인할 테니 도망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를 품에 안은 여자가 재빠르게 도망친다. 그 모습을 확인한 시이가 제 앞에 놓인 좀비 무리를 막막하게 바라본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죽겠구나.

 

그녀가 두 눈을 감고 찾아올 죽음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의아함을 느낀 시이가 조심스럽게 두 눈을 떴을 무렵이었다.

 

"알터-!"

 

눈을 뜬 순간, 시이가 반사적으로 외친 이름이었다. 그녀의 얼굴에 짧은 반가움이 스쳐 지나간다. 그녀가 빠르게 알터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손쉽게 좀비를 해치운 이후였다. 알터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시이의 손을 붙잡았다.

 

"잘 지내셨죠, 시이 님! 그동안 정말···,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 ···나도, 정말 보고 싶었어. 알터."

 

목에서부터 올라오는 먹먹함에 시이 또한 눈물을 글썽거린다.

 

"근데 시이 님은 언제나 누군가를 구하고 계시네요."

 

알터가 시이의 상처 부위가 뚫어져라 바라보며 속삭였다. 아. 그 말에 할 말을 찾지 못한 시이가 능숙하게 웃어 보이며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아무래도 나서는 건 내 주특기니까. 오지랖이지, 뭐. 그렇게 말하면서 씨익 웃는 시이의 모습에 알터가 두 눈썹을 휘둥그레 뜬다. 그럴 리가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걸요?! 시이 님 당신께서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남을 먼저 위하시잖아요!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 그만, 거기까지 하시죠. 좀비가 몰려와요. 저지하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알터가 크게 외쳤을 무렵이었다. 동시에 두 명의 고개가 돌아간다. 시이의 얼굴 위로 다시 한번 반가운 기색이 스쳐 지나간다. 르웰린!! 이어서 시이가 외쳤다. 명백한 호의의 표시에 르웰린이 입꼬리를 씰룩였다. 크흠, 그가 입가를 가리고는 잠깐 기침하더니 곧 태연한 얼굴을 가장한다. 르웰린이 둘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시이 님?"

 

르웰린의 안부 인사에 시이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덥석 르웰린의 손을 붙잡았다. 두 눈이 초롱초롱 빛이 난다. 시이가 이어서 답했다.

 

"나야 잘 지냈지. 너는 잘 지냈어, 르웰린?"

 

르웰린 또한 크지는 않지만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잘 지냈습니다. 그것보다 다치신 것 같은데 어서 치료부터 하죠."

"맞습니다, 상처가 덧나게 둬서는 안 됩니다. 시이 님."

 

차례대로 르웰린과 알터가 말한다. 아, 그러고 보니 나 더 이상 밀레시안이 아니었지. 다시금 깨달은 사실에 시이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조차도 아주 잠시의 일이었다. 알터와 르웰린이 시이를 이끌고 치료를 시작했다.

 

세 명은 그러면서도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대개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로 인해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최근 알터는 쿠키를 직접 구울 뿐만 아니라 케이크도 도전하고 있고, 전보다 손이 더 거칠어져서 관리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으며, 또한 르웰린은 화단 관리를 남에게 종종 가르쳐 주며 여동생과도 덜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시이 님, 시이 님. 당신께서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알터가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나? 나야···. 시이가 차근차근 제 이야기를 시작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잠시 후, 소리없는 침묵이 셋을 감싼다. 모든 것이 조용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시이가 입술을 계속 움죽거린다. 그러고 보니 항상 만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지, 정작 만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를 생각해보지 않았구나. 새삼 깨달은 사실에 시이가 속으로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무슨 말을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적합한 것을 알지 못하겠다. 다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노라면···. 한참 동안 고민하던 시이가 곧 입술을 열었다.

 

"너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진심으로 기뻐."

 

그건 한 치의 거짓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진심이었다. 시이가 그렇게 조곤거리며 환하게 웃었다. 고른 치열이 입술 사이로 드러나고, 두 뺨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눈매는 휘영청 반달 곡선을 그어 내린다. 누구라도 한 번쯤 뒤를 돌아볼 법한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알터와 르웰린이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마 평소 많은 부분에서 다른 그들일지라도 이번만큼은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저 사랑스러운 존재와 계속해서 함께하고 싶다고. 저 웃음을 유구하게 보고 싶노라고.

 

 

---

 

 

좀비물도 전생도 좋아하는데 둘이 섞여서 맛있었음!!

필력도 진짜 좋으셔서 술술 읽혔음.

아쉬운 건 기승전결에서 승에서 끝난 느낌이란 건데 내가 5천자로 신청하고 + 사건 진행 위주로 보고 싶다고 구인글에 써놔서 어쩔 수 없었는 듯 (담부턴 심리 묘사 보고 싶다고 써둬야겠다고 다짐함)

가능 장르에 마비노기는 안 적혀계셨는데 신청서에 적어두지 않았던 사소한 설정까지 잘 살려주셔서 감동…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망상 소재는 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