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웰시이] 센티넬버스 AU 프리퀄 _연화님

연화님 (@End_And_00)

 

이어지는 편: https://allshilly.tistory.com/46

[알시르] 센티넬 버스 AU_연화님

 

르웰린 신시엘라크는 태어나기 전부터 국가적인 유명인사였다. 나라에서 손꼽히는 자산가이자 강력한 예지계열 센티넬을 대대로 배출해낸 신시엘라크 가문의 첫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르웰린은 제게 쏟아진 기대에 훌륭히 부응해 아주 어릴 때 예지 능력 발현에 성공했다. 타고난 재능과 피나는 노력이 합쳐져 자신의 능력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알았으며, 비전투계열 능력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전투력까지 인정받았다. 르웰린은 차세대 가장 촉망받는 센티넬이었고 게이트 방비의 차기 총책임자로 꼽혔으며 그에게 남은 건 성인이 되기까지의 시간 뿐인 것처럼 보였다. 정확히 시이 리리아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인류가 지금껏 가져본 적 없는 최강의 센티넬. 어쩌면 광오하기까지한 이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이는 진실로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여 르웰린은 시이를 생경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쩌면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만큼 강대한 존재였다. 사실 일반인들의 눈으로 보자면 그를 포함한 다른 보통의 센티넬들도 충분히 인간의 축에서 벗어났을지 모르지만 그런 센티넬들의 눈에서도 시이는 달랐다. 박탈감이 들기에는 너무 차원이 다른 강함 아닌가.

기실 르웰린이 시이에게 처음 느낀 감정은 흥미에 가까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 역시 아직은 어렸으므로 파장 측정 기계가 고장나고 까탈스럽게 굴던 윗분들이 골치를 꽤나 썩혔다는 이야기는 즐거울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호감까지도 들었던 것 같다. 아직 정식으로 업무를 받을 수 없는 미성년자라 직접 만날만한 일이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높으신 분들이 말하는 것처럼 제멋대로인 센티넬인지, 몇몇 센티넬들이 떠들 듯 세상을 게이트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시킬 사람인지 판단하는 건 직접 만날 때를 위해 미뤄두었다.

그리고 르웰린이 성인이 되어 처음 센터에 들어선 날, 그는 운명처럼 시이 리리아를 만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작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전무후무할 센티넬이라는 수식어가 저토록 작고 유약해 보이는 사람에게 붙어도 되는 걸까? 다음 순간 크림색 머리카락이 살랑이고 푸른 눈동자가 그를 확인하더니 둥글게 휘었다. 그건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곧잘 내보이곤 하는 아주 의례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시이의 단순한 행동은 그의 '감'을 자극한다. 하여 르웰린은 알았다. 시이 리리아는 진실로 영웅이 될 것이다. 심장이 가볍게 뛰기 시작한다. 조금 더워지는 것도 같았다. 그건 어떤 감정에 대한 예지였다. 분노인지, 단순한 흥분인지 모를 것이 번개처럼 그에게 내리꽂혔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르웰린은 계산을 끝마쳤다. 이 조그맣고 어딘지 맹해보이기까지 하는 센티넬은 정말 세상을 바꿀지도 모른다. 아니 적어도 이 시대를 대표할 센티넬 정도는 될 것이다.

"반갑습니다. 시이 리리아님 맞으신가요?"

"맞아. 반가워. 너는 르웰린 맞지?"

"네, 르웰린 신시엘라크 입니다. 알고 계시는군요."

말갛게 웃은 시이가 유명하지 않냐며 받아쳤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시이가 지금 돌풍을 일으키며 연일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고 있다지만 르웰린은 기억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꾸준히 언론에 오르락내리락 해왔기 때문이다. 겸양을 떠는 대신 한 번 웃어보인 르웰린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능력 제어 훈련에 다녀오신 건가요?"

"응. 오늘이 마지막이었어. 이제 곧 쉬운 임무부터 투입될 거래."

생각보다 빠른 속도였다. 르웰린은 이것이 시이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인지, 하루빨리 저 능력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조급함인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돌아가면 따로 자료를 요청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전자라면 가까이 지낼 이유가 느는 것이고, 후자라면 조언 몇 마디 해주고 친분을 다져볼만 했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르웰린은 자신의 첫 임무 날짜도 얼마 뒤일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과연 겹칠까? 세련된 방식은 아니지만 효과적인 홍보가 되긴 할 것이다. 최근 게이트 사고가 제법 발생했다는 점에서 미루어보면 내세울 문구도 뻔했다. 르웰린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끊었다. 어차피 계속 접점이 있을 거라면 무리해서 다가갈 필요는 없었다. 그가 원하는 건 친구 놀이가 아니라 적당히 비즈니스적인 친분이니 그 정도가 적당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다음에 또 보자며 손을 붕붕 흔들어댄 시이가 멀어져 갔다.

다음으로 르웰린이 시이를 만난 건 첫 임무 현장에서였다. 전혀 놀랍지 않은 결과였으나 시이는 여전히 그런 계산 따위는 모른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일신의 능력이 뛰어난 것은 맞지만 임무에 빨리 투입하라는 압력 역시 무시 못할 수준이었다는 보고가 스쳐간다. 사실 압력이 없을 수는 없었다. 여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정부에게 시이의 등장은 단비와 같을 테니까. 정치적 계산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위에서 줄 타기를 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제 뜻을 펼치겠지만, 솔직히 말해 그럴 수 있는 성격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저렇게 순진하게 굴다가는 분명 무너질 순간이 올 것이다. 르웰린은 내뱉지 않을 충고를 혀 끝에서 가만히 굴리며 표정을 정리했다.

"또 뵙네요."

"그러게. 르웰린도 첫 임무라며?"

"네. 나이 때문에 훈련만 주기적으로 받았거든요."

물론 그게 현장에 처음 나온다는 뜻은 아니다. 센터는 만성적인 인력부족 상태였다. 게이트 바깥에서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는 역할 같이 중요하지 않은 임무는 낮은 등급의 성인 센티넬을 책임자로 올리고 고등급의 미성년자 센티넬을 딸려 보내는 편법을 종종 썼다. 적당히 포장된 말로 현실을 알려준 르웰린은 시이를 이끌고 인원확인을 마친 뒤 지정된 자리로 가서 앉았다.

"게이트 내부 팀이 전멸하고 크리쳐가 쏟아져나오는 건 드문 일이기도 하고, 발생한다 해도 인근에 긴급 소집령이 떨어지는 게 먼저이니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배우긴 했지만, 첫 임무잖아. 떨리는 걸."

"흐음, 이런 것도 경험이니까요. 어쩔 수 없죠."

그의 첫 임무를 회상하니 이해가 가긴 했다. 저렇게 바짝 긴장한 채 게이트를 노려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처음이라는 건 늘 떨리는 법이다. 르웰린은 시이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미리 가져온 책을 펼쳐들었다. 어차피 말 몇 마디에 긴장이 풀릴 리는 없으니 자연스럽게 풀릴 때까지 놓아둘 셈이었다. 그의 판단은 꽤 정확해서 날짜가 지날수록 시이의 긴장은 점점 풀려갔다.

"르웰린은 무슨 책을 읽는 거야?"

"지금 읽고 있는 건 게이트 관련 정책 변천사에 관한 책입니다."

"그런 것도 읽어? 대단하네."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알아야 어떻게 변할지 예측이 가능하니까요. 시이님도 여유가 나신다면 한 번 읽어보세요. 필요한 순간이 올 겁니다."

시이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슬금 뒤로 물러났다. 약간 내밀어진 손바닥이 거절의 의미를 확실히 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기회가 되면 읽어보겠다 말한 시이는 반짝이는 감탄을 담아 그를 올려다 봤다. 그건 꽤 낯설었다. 그가 무언가 두꺼운 책을 읽고 있는 건 당연하거나 지루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더 어릴적에는 이해를 하고 읽는 거냐는 무시거나 괴물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던가. 크게 신경쓴 적은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새삼스러운 사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요즘 개정된 주요 정책은 뭔지, 앞으로 주시해야할 정책에는 무엇이 있는지. 르웰린은 답지 않게 긴 설명을 했다. 시이는 훌륭한 청자이자 학생이었고, 대화는 생각보다 즐거웠다. 그와 시이의 첫임무는 무난하고 기분 좋게 끝날 것만 같았다. 그런 감상이 불러온 방심이었을까. 혹은 인간의 힘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재해였을까. 르웰린의 예지가 발동하는 것보다 시이가 이변을 감지해내는 것이 빨랐다. 대화를 하다말고 자리를 박찬 시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들 피해!"

날카로워진 목소리가 공간을 가른다. 다음 순간 르웰린 역시 둔탁한 게이트의 파장을 감지했다. 대기하고 있던 가이드 중 파장에 민감한 사람부터 비틀거리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게이트 주변의 공기가 일렁인다. 이상현상을 목격한 사람들이 공포에 질렸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다. 게이트 공략 실패의 징후였다. 어떻게를 생각하기에 앞서 르웰린은 긴급호출 버튼을 눌렀다. 뒤늦게 먼지가 앉은 지식이 떠오른다. 게이트에 진입한 팀이 한순간 전멸할 경우 게이트는 막대한 파장을 한 번에 흡수한다. 이때 흡수된 에너지가 일정량을 넘긴다면 게이트는 전조증상 없이 폭주할 수 있다.

"게이트 L216193224 폭주. 지원 요청합니다."

제 안에 뛰어든 센티넬과 가이드들의 생명을 집어삼킨 게이트가 기괴한 크리쳐를 꾸역꾸역 뱉어내기 시작한다.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듣고 외운 메뉴얼이 머릿속에서 팔랑팔랑 넘어갔다. 우선 주변을 비워야했다. 본래라면 전조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 해야하는 일이었다. 크리쳐가 나타난 지금은 늦다. 그나마 마구잡이로 뛰쳐나가는 사람들은 바깥 요원의 통제에 맡기면 되지만 파장에 짓눌려 움직이지도 못하는 이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가장 먼저 뛰쳐나온 크리쳐가 지상에 발을 딛고 포효한다. 처음 제대로 마주한 크리쳐지만 감상에 빠질 새는 없었다. 기계적으로 총을 뽑아들고 장전한 뒤 조준했다. 호흡을 정돈한 뒤 격발하기 직전 크리쳐의 머리가 먼저 날아갔다. 이미 저만치 앞서간 시이가 크리쳐 셋을 연달아 처리하며 외쳤다.

"르웰린, 사람들 먼저 옮겨줘. 여긴 내가 막고 있을게."

크림색 머리카락이 거센 풍압을 맞아 휘날린다. 게이트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파장 앞에 오연히 선 소녀는 결코 패배하지도 무너지지도 않은 채 모두를 지켜낼 것만 같았다. 체력의 소모를 줄이려는 듯 파장을 얇고 날카롭게 벼려내 쏘는 얼굴은 싸늘하고 또한 아름다웠다. 작고 유약하다 생각했던가? 그건 정말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르웰린은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만이 남은 공터를 걸어 게이트에 가장 가까이 있던 가이드에게까지 다가섰다. 비형질인은 이정도 농도의 파장 아래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미쳐버릴 것이고, 이곳의 센티넬은 그와 시이 뿐이니 이 사람들을 전부 옮기는 건 그의 몫이었다. 실례할게요. 의례적인 말에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는 가이드를 안아들고 땅을 박찼다.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족히 수십 번은 넘었을 것이다. 급하게 충원된 건 게이트 바깥이나 지킬 낮은 등급의 센티넬 뿐이었다. 제대로 된 센티넬이 오려면 적어도 몇 시간. 르웰린은 고개를 돌려 시이를 바라봤다. 일견 파도처럼 밀려오는 크리쳐들이 시이의 앞에서 전부 먼지로 화하고 있었다. 안전 지대로 대피한 사람도, 아직 대피하지 못한 사람도 모두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보고 있다. 인류가 지금껏 가져본 적 없는 최강의 센티넬. 언론이 법석을 떨며 붙여준 호칭은 더없이 적확한 표현이 되어 모두의 뇌리에 각인된다. 시이는 모든 사람이 대피하고 제대로 된 충원 센티넬이 달려올 때까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은 채 그렇게 있었다.

총을 쏠 새도 없이 바스라지는 크리쳐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던가. 르웰린은 한 번도 격발되지 못한 그의 총을 내려다봤다. 긴장해서 얼어붙은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쏠 시간이 없었다. 게이트에서 떨어져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먼지로 화하는 크리쳐들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 압도적인 광경을 만들어낸 사람은 지금 속이 엉망이 되어 피를 토하며 가이딩을 받고 있었다. 대중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는 이유로 숨어서 말이다. 게이트 폭주를 막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면, 적어도 게이트 폭주를 혼자 막아낸 센티넬이 그런 대우를 받는 것에는 무언가를 해야하지 않았나? 차오르는 무력감을 집어삼킨 르웰린은 인계를 마치고 센티넬들이 완전히 포위망을 형성한 것을 확인한 뒤 시이가 있을 곳으로 향했다. 폭주의 위기에서는 간신히 벗어났으나 여전히 불안정한 파장이 그를 반긴다. 힘 없지만 다정한 목소리 역시도.

"르웰린 왔어? 몸은 괜찮아?"

"크리쳐는 시이님이 전부 처리하셨으니까요. 직접 전투 계열 센티넬은 아니지만,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것 정도로 지치지는 않습니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걸까. 르웰린은 조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받아친 뒤 가이드가 빠져나간 자리에 앉았다. 어색하게 웃는 시이와 눈을 마주치면, 예의 그 '감'이 찾아든다. 처음보았던 영웅이 된 시이의 이면이 보였다. 그가 겪을 비극과 비난들. 사실 능력이 아니라도 확신할 이야기였다. 영웅이란 자리는 원래 그런 자리다. 본래는 혼자 이겨나가게 놓아둘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르웰린이 멀쩡해서 다행이야. 걱정했거든."

그건 아까 게이트를 홀로 막던 모습 때문이기도 했고, 지금 새초롬한 눈매를 둥글게 휘며 하는 말 때문이기도 했다. 주변이 더워지는 것만 같았다. 이건 예지의 영향을 받은 감정인가, 지금 그가 오롯히 느끼는 감정인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는 시이 리리아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르웰린은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을 상자에 넣고 자물쇠를 잠갔다. 마냥 감정을 회피하는 멍청이가 될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직 섣불리 꺼내볼 것은 못되었다. 의식의 가장 밑바닥에 낯선 감정을 밀어둔 르웰린이 평소처럼 흐음하고 콧소리를 내며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그럴 시간에 시이님의 몸이나 신경쓰시죠. 피도 제대로 닦으시고요."

"앗, 아까 닦았는데? 아직 남았어?"

시이에게 손수건과 거울을 함께 건네준 르웰린은 제 인생에 난입한 영웅을 빤히 바라봤다. 말간 얼굴이 그를 향했다가 다시 거울로 향한다. 혹시 할 말 있어? 그 말을 하기까지 한참이나 눈치를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토록 강대한 힘을 가졌다면 조금 더 대범하고 뻔뻔하게 굴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 텐데. 어깨를 으쓱한 르웰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의 사태를 정부가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언론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대처방법은 무엇인가. 할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나 무엇을 얼마나 대비한다고 해도 모든 비극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단숨에 영웅이 되고 국가 안전의 상징이 되어버린 시이는 곧바로 가장 위험한 곳에 내몰렸다. 그리고 경험의 부재는 강대한 힘과 관계없이 필연적으로 화를 부른다. 선전용으로 꾸려진 팀은 분열하고, 서로 싸웠으며, 어느 날의 게이트에서 결국 시이만을 남기고 전멸했다. 르웰린은 시이가 그렇게 우는 것을 처음 봤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다. 시이의 팀에 합류한 건 그때문이었다.  외부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으므로. '그' 르웰린 신시엘라크가 시이의 팀에 합류했다는 소문이 돌자 황량하던 지원서가 쌓이기 시작했다. 시이는 그렇게 겨우 다시 출발점에 섰다. 외부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설령 오해와 갈등이 거듭된 상대였다 한들 상실은 상실이었다. 시이는 상실을 다시 메울 방법을 찾지 못했다. 게이트와 관련된 모든 인명사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에 지쳤다. 비합리적인 것을 알면서도 책임감을 떨쳐낼 수 없는 것이 괴로웠다. 르웰린의 충고로 흘려듣게 되었으나 모든 비난에 가슴에 쌓이는 것이 과연 아무것도 없겠는가. 해서 시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더이상은 그럴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건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은 언제나 유쾌하지 못했으나 르웰린은 언젠가 시이가 돌아올 것을 믿으며 묵묵히 시간을 벌었다. 이런저런 서류작업으로 게이트 진입 명령을 늦추는 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리고 시이는 언제나 르웰린의 믿음에 답했다. 비록 원했던 방식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시이님!"

명랑한 목소리와 함께 알터가 공터를 가로질러 성큼성큼 다가왔다. 시이의 전담 가이드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껄끄러웠다. 어머니의 급작스러운 은퇴와 관련 있는 가이드이기도 했고, 그의 등장으로 폭주의 위험이 있어 게이트에 들어갈 수 없다는 핑계를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새로운 핑곗거리를 어디서 만들어야 할 지 고민했지만 쓸데없는 짓이었다. 전담 가이드의 적응 기간 동안 알터는 시이를 일으켜세웠다.  르웰린에게는 불가능한 방식이었다. 그에게 감정이란 함부로 표출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고, 비난이란 합리적으로 대처해야하는 것이었으며, 인간관계란 이해타산을 중심으로 굴러가야 하는 것이었으므로. 르웰린 신시엘라크가 시이 리리아에게 설명하고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이란 그런 게 전부였다. 하지만 알터는, 지독히 솔직하며 맹목적인 그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았다. 제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비난에는 아파하고 슬퍼하며, 흔들리지 않을 애정으로 작동하는 세상. 알터의 세계에 발을 들인 시이는 그제야 일어설 힘을 얻었다. 다시금 게이트 앞에 서서 르웰린이 기다리던 모습으로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로부터 말미암지 않은 변화라는 사실이 씁쓸하다면 이기적인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르웰린, 진짜 괜찮겠지?"

시이의 목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린 르웰린은 벌써 알터가 저만치 멀어져있는 것을 확인했다. 게이트에 들어갈 시간이었다. 반사적으로 사용한 예지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네, 괜찮습니다. 방심하지만 않으신다면요. 그러나 결코 미래를 확언하지는 않은 르웰린이 먼저 게이트에 진입하는 시이를 따라 함께 발을 내딛었다. 그로부터 말미암지 않은 변화라면 어떤가. 결국 시이의 변화 덕에 그는 시이와 함께 전장에 설 수 있었다.

“곧 크리쳐가 등장합니다. 전원 준비.”

그리고 지금의 르웰린은 더이상 무력하지 않다.

 

---

 

연화님의 글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이 이상. 표현할 방법이 없어 괴롭습니다.